생협에서 사과를 구입했다.
빠알간 여름 사과.
어떤 종자인지는 모르지만 빨갛고 단단하고 달다.
사과를 보면서 생각한다.
이 사과가 씨앗에서부터 과일의 모양으로 변모하고 나에게 오기까지
어떤 일들을 겪었을지를 나는 결코 알 수 없다는 걸.
한 사람을 대할 때 문득 문득 까마득한 느낌을 갖는다.
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
나는 역시 절대 알 수 없다.
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은
어쩌면 우주를 이해하는 일.
어째서 나는 그렇게도 섣불리
하나의 사람을 판단하고 정의하려 하는가.
고쳐지지 않는 악습.
At the Piano
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- 1858-1859
Taft Museum (United States)
Painting - oil on canvas
대여섯 살 즈음,
나는 피아노란 것을 처음 배웠다.
여린 손가락에 비해 피아노의 건반은 너무 딱딱했고 힘이 셌다.
한마디로 힘에 겨웠다.
처음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던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.
내 알량한 기억력으로도 뚜렷이 기억할 수 있는 몇 몇의 일들 중의 하나인 그 사건.
하지만 나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아는 많은 사람들 중
내가 대 여섯 살에 피아노 건반을 처음 누르면서 느꼈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는 사람이
대체 그 누구이겠는가.
나는 늘 아닌 체 하면서도 많은 것들을 기대하고 있었던 게다.
그들이 나를 이해하기를.
그들에게 내 진정을 인정받기를.
부질없는 일이다.
인간이란 존재는 본래 그렇게 타인의 심연을 결코 알 수가 없는데도......
다시, 피아노를 치고 싶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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